그 외아들

Message 2018.02.28 15:16 |

설교본문 : 요한복음 1:1-14

설교일자 : 2018. 02.25.

 

 

예수 부활 구원이라는 문구가 한 대형교회 앞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만 보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 사순절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영광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부활도 구원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큰 신비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성경의 증언에 대해 의문을 제시합니다. 오천명을 먹이고 병자들을 고치신 것에서 시작해, 동정녀에서 태어나신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다 그렇다 쳐도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성경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야기가 가장 큰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를 이해하고 나면 다른 믿을 수 없다던 문제들은 다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가장 큰 신비일까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를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간인 예수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잉태가 되었는가가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그저 한 사람의 아들로 예수가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탄생의 의미는 전혀 다른데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본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셨습니다. 그것을 교리적으로 삼위일체라고 말하며 하나님이라는 한분에게 세 가지 위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이 아기로 태어 나셨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능하신 하나님이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고 밥을 먹여 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렇게 질문을 해 보니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좀 의문이 드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아주 훌륭한 인간이라거나,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적이나 부활이 믿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것들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놀랄 일이고 그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것이 놀랄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은 그것이 모두 신비이다! 불멸하시는 그 분이 죽으시다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외아들

요한복음 서론이라고도 불리우는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려고 하는 것은 독생자”(14)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one and only Son of God이라고 되어있는데 신학적으로 말할 때 이를 a son이 아닌 the Son이라고 말합니다. 한글로는 이 개념의 차이를 분명히 나타내기 힘들지만 설명하면 많은 아들들 중에 한 아들이 아니라 바로 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아들, 구약에서 예언 되었던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바로 그 아들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역사적으로 많은 이단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제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거룩하신 분이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아들이라는 말을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하는 것은 그 외아들의 한정성이 아닙니다. 바로 그 외아들이 진정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는 태초에라는 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과 함께라는 말을 통해 인격적으로도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즉 하나님과 동등한(정확히 같은) 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창조의 행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하게 피조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을 말해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도 없으며 유지할 수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즉 성육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말씀이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표현되고, 말씀으로 임재 하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성육신을 하셨고 그래서 성경은 그 성육하신 하나님을 그 외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엄청난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성육하셨다고 하셔서 하나님의 신성의 어떤 부분이 제한되거나 빠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신비로운 것으로서 이성을 넘어서는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4세기 신학자인 아타나시우스는 히브리서 2-4장을 근거해 이를 신조(信條)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고 사람이며, 완전한 하나님이고 완전한 사람이다. 그 분은 하나님이고 또 사람이지만, 둘이 아니라 한 분이신 그리스도이다. 신성을 육신으로 전환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성을 더함으로써 한 분이신 것이다.”

 

가난하게 되신 그 외아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을 성육신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는 보다 분명하고 참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성육신이 하나님으로서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은혜로서 설명하였고 그럼으로 인해 다른 범죄자들과 동일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육신의 의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바라보면 그 의미가 선명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제임스 데니는 신약에서 구속과 관련되지 않고 규정될 수 있는 성육신이란 전혀 있을 수 없다.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보리가 계시의 초점이며, 기독교에 대한 해석 중 이것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모든 것은 기독교를 초점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그것을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책(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난함을 통해 우리는 부유해 졌습니다. 성경은 물질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랑스럽지 않은 우리 인간을 위해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난해 지심으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소망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의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의미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묵상하고 참된 소망을 품는 모두이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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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seme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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