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요한12:1-29

설교일자 : 2018. 04. 15.

 

돈에 대한 병적 집착과 아랫사람에 지극히 인색했던 수전노 근성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려져 더 이상 언급하는 게 무의미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전 보좌관이 한 말입니다.(세계일보 413일자 보도) 그의 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심지어 연관 검색어에 돈에 집착이란 말이 함께 뜰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돈이 없다고 합니다. 사회에 다 환원 하였고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지 못할 지경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런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의 삶이, 그의 삶의 자리가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자리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의 본문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의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3-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로 10-11절에서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믿음을 증명해 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14, 15절에서는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 우리의 행위, 삶의 길, 위치가 믿음의 유무를 증명한다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계명을 지키는 것,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것,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아무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해본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말라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에 앞서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 지금 요한1서를 쓰는 목적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있으면 하나님과 단절 된 것이고, 죄를 범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죄를 범하고 있으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선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장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 설명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의 자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며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타협과 낙심 사이

우리가 죄의 자리를 떠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함은 성경전체에서 일관되게 알려주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많은 교회들이 이를 강하게 설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의 삶의 모습을 볼 때 이것이 온전히 믿음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고민하고 씨름하다고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너무나 쉽게 타협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머뭇거리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수 십, 수 백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먹고 살기가 바쁘고, 불우한 배경이 있고, 피곤하고, 주변의 강요 때문이고, 자식 때문에 혹은 부모 때문이고, 나는 따르고 싶은데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금방 타협하며 나는 그들만큼 믿음이 크지 못하다, 그들과 처한 상황이 다르다라고 탈출구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것은 논쟁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분명히 말합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6) 타협하지 마십시오. 변명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낙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은 도저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믿음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2) 또한 우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2) 그래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하십니다.(14) 이것이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합니다. 예수님 안에, 빛 가운데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안 되니 죄를 범하지 말고, 그 가운데 타협하거나 낙심하지 말라고 요한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보여진 것이요,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한번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15) 세상과 하나님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 타협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 우리의 소망은 영원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품고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 안에 머무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안에 거하시겠습니까? 본문은 다시금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며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19) 우리의 삶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나의 행함, 나의 삶, 나의 자리를 하나님께로 옮겨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는 모두이시기를 기도합니다.

'Mess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0) 2018.04.21
하나님과의 사귐  (0) 2018.04.21
나의 십자가  (0) 2018.04.2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0) 2018.04.21
십자가의 의미  (0) 2018.04.21
그 외아들  (0) 2018.02.28
Posted by usemegod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