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의미

Message 2018.04.21 18:37 |

설교본문 : 고린도후서 4:6-18

설교일자 : 2018. 03. 04.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후 평양 시내에 술집이 사라지고 기독교인들이 장사하는 집에선 속이는 일이 없으니 그 가게에서는 누구나 믿고 거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당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은혜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평양 대부흥의 배경엔 참된 회개가 있었습니다. 내가 잘 되고 복 받기 위해 믿은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용서하신 그 은혜의 참된 의미를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고 쟁취하기 위해 율법적으로 규율을 지킨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용서 받고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러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루어진 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죄가 어떻게 용서 되었고 그래서 어떤 결과가 주어진 것인지 분명히 알고 회개하여 믿어야 합니다.

 

죄와 심판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내가 그리 큰 죄를 짓지 않았다. 예수님이 꼭 죽으셨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대충 살던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죄를 어떤 범죄적 행동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의 의미를 먼저 알아야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원죄로부터 기인하고 그로인해 하나님과의 단절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 덧 붙여서 한 가지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셔서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공의의 심판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결과로 하나님 나라 아니면 지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지만 이를 얼마만큼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믿음이 달라집니다. 막연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마지막 심판에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했으니 내가 그리 믿음이 크지는 않을지 몰라도 믿기는 믿으니 구원 받겠지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니 결과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 가치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지옥에서 영원히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결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그 문제를 해결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문제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처해 있는 진짜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써보면 그 문제가 너무 거대해서 도저히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낙심이 되고 두렵고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의 죄가 무엇인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속죄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너희들이 다 죄인이니 다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처한 문제를, 인간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하나님이 대신 해결 해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며 복음이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우리의 문제(, 하나님을 거부함)가 우리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이를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 때문에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길에서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사탕 하나를 줘 보십시오.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탕을 줬다고 해서 평생 은혜를 갚겠다고 할 아이는 없습니다. 넘어진 것이 그리 큰 문제도 아니고 사탕이 근본 문제를 해결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문제는 돈 문제인지 예수님도 이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빚진 자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저히 자기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을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 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살려고 하여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신 갚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죄를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공의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 그 죄 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대속이라는 말처럼 죄 값을 다른 사람이 대신 지불한 것이지 그냥 쓱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속죄는 결코 가벼운 것도, 무가치한 것도, 공짜도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도저히 치룰 수 없는 죄 값을 하나님이 직접 지불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속죄하신 것)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의미를 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목의 의미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본질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그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앞서 본 것과 같이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문제가 해결 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화목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이를 화목제사를 통해 이루었습니다. 이는 무속신앙에서 행했던 인신공양 같은 희생과 엄격하게 구별됩니다. 그리스 신화나 우리의 전래동화 속에도 인신공양을 통한 희생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죄의 문제를 철저하게 묵상하고 씨름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과 같이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11)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오늘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중에 본문을 다시금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으며(4-6)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고(6-7) 이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8-18)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14-18)

십자가의 의미는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입니다. 나의 죄의 문제를 직시하고 십자가 앞에 서서 참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시는 모두이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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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seme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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