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태복음 16:21-28

설교일자 : 2018. 02. 18.

 

 십자가의 가치가 상실된 오늘날 십자가를 외쳐야 하는 사명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십자가 없이 기독교가 있을 수 없고, 십자가 없이 신앙이 있을 수 없고, 십자가 없이 구원이 있을 수 없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며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십자가 앞에 서야 할 때입니다.

십자가의 필연성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지난 주 보았던 은혜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 동일합니다.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인식이 잘못 되었다기보다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좋은 것, 은혜로운 것으로 여겨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완전히 맞지 않는 상황 혹은 맞지 않는 것에 십자가를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속 썩이는 사람을 향해 나의 십자가라고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거부반응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죄와 마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십자가 앞에 서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고난에 처하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의 죽음을 견딜 수 없어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오늘의 본문과 같이 성경은 우리도 모두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에게 십자가가 지워진 시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은 언제 정해졌을 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어느 시점부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을 인지하셨을까요?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태초부터 십자가가 예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태초부터 있었고 하나님은 태초부터 십자가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셨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그것을 통보 받았거나 마주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것과 같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은 이미 그 계획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측면은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통보되거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강제적으로 지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였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가 예수님에게 아무런 고통도 없는 별것 아닌 일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이 의미는 차후에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종합해 말할 때 신학적으로 십자가의 필연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고 자의에 의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그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21)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고 그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이 필연성에 자의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면 십자가는 살인 행위가 되고 맙니다. 필연적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자의적으로 참여하셨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놀라운 은혜, 즉 예수님의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꺼이 내어주신 희생이란 말입니다. 또한 필연적이란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가르침에 따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란 의미를 지닙니다. 순국선열들과 같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가치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런 가치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셨기에 자발적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나타났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신 말씀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2:48, 12:28 참조)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너머

필연성으로 인해 십자가에 직면했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이지만) 십자가 너머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22, 23)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십자가 사건을 그 너머에 있는 일들에 비추어 해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던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부활 시키신 것입니다. 이 죽음 너머의 일들이 바로 생명의 나라입니다. 바로 그 곳에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21)라고 성경이 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 없이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주님의 보혈 없이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

예수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십자가는 전 생애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필요성을 모든 제자들에게도 부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연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 십자가는 예수님에게나 우리에게나 동일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 이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고행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고난에 처하란 것도 아니고, 참회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거짓된 해석은 자신을 더욱 강화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희생과 고난을 감수하고 전생애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제자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삶에 있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과 동일하게 십자가 너머에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죽어야 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믿어야 합니다. 씨앗이 죽어 싹을 틔우고 영글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좁은 문을 지나 광대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죽음을 겪어야 생명에 들어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섬김과 영광에 참여하는 모두이시기를 기도합니다.

'Mess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의미  (0) 2018.04.21
그 외아들  (0) 2018.02.28
십자가 앞에 서는 믿음  (0) 2018.02.28
하나님의 은혜  (0) 2018.02.28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0) 2018.02.28
하나님의 사랑  (0) 2018.02.02
Posted by usemegod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