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로마서 3:19-31

설교일자 : 2018. 03. 18.

 

뇌과학자인 정재승박사가 한 TV프로에 나와 미신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차이나는 클라스’, JTBC, 18.03.13일 방송) 강의의 주된 내용은 사람들이 미신으로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논리와 과학적 근거 그리고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박사는 강의 말미에 칼세이건의 말을 인용하며 결론으로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가 필요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의 중 소개된 미신들의 내용들을 보면 한국 교회 안에서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인본주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신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가치가 참되게 나의 신앙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신앙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외형적으로 성장하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성도의 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위기라고 말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외형이 줄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거짓된 신앙을 쫒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리니 외형도 축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신과 같이 본 교회에만 출석해야 하고, 십일조도 본 교회에만 해야 한다고 믿는 것(본 교회라는 말이 가능하기는 할까요?)이나 주일 성수를 잘 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는 것 같은 미신 같은 거짓 신앙이 복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기독교의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참된 신앙,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신앙은 무엇일까요? 단적으로 말한다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지난 몇 주간 살펴본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입니다. 다시 한 번 요약해 보면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죄이며 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신다는 것, 이 심판으로 인해 영원한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처지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벽한 대속을 이루시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야 다들 이를 복음이라 말하며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질문을 해 보면 근본적으로 이 복음에 동의하지 않으며 또한 믿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질문1. 당신에게 십자가는 완전하고도 충분합니까?

그래도 신앙의 성찰이 있는 분이라면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묘히 이 질문을 피하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완벽하고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신앙이 부족하니 이러저러한 노력을 하고 훈련을 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겠습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말 같지만 완전히 다른 말을 지금부터 할 테니 주의해서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완전함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내 자아를 쳐서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신앙이 성숙하고 내가 변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에도 동일해 보이지만 첫 번째 태도는 인간 중심적 사고입니다. 내가 쟁취할 수 있다는 사고는 구원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을 배제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태도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고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또 교묘히 피해가려고 말합니다. ‘말이 그렇지 나도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의 삶은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입니까? 십자가가 완전하고 충분해서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따라 사십니까? 전 재산을 다 잃는다 하여도 십자가면 충분합니까? 생각하기도 싫으시지요? 그러니 지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게 포장하고 또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서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을 다르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차이를 강조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앞에 계시고 나는 눈을 감고 예수님의 인도에 따라 그 뒤를 따라가는 것, 내가 앞에서고 예수님이 뒤에서 따라오며 내가 길을 보고 판단하고 가끔 예수님에게 물어보며 가는 것. 이 둘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당신에게 십자가는 완전하고 충분합니까?

 

질문2. 십자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까?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현대 사회는 너무 발전하고 인류도 점점 진화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성숙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닙니까? 인류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없어지나요? 성경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질문3. 십자가는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개인주의적입니까?

역사적으로 개인구원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가 개인적인 것은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하지만 십자가가 나만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계시된 것입니다. 모두를 향하고 있는 것이지 나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십자가를 강조하는 것은 그 속에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사회 참여적이고 이타적으로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자신에게 더욱 철저하게 질문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거부하고 싶더라도 복음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이런저런 논리를 앞세우며 율법을 끌어들여 보다 그럴싸하게 포장을 했지만 결국은 복음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은혜로서의 복음을 말하고(22) 이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합니다.(2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복음으로 제시합니다.(24)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 피로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만드는 화목 제물이라는 것입니다.(25) 그리고 이어서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26)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이라는 것입니다.(2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그 진리의 복음을 믿음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두이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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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seme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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